An unperfect day

 

 

 

 

 

 

 

 

 

 

 

 

나 없이 집 가는 게 별로라고..? 권지용이 한 말의 의미만 몇 시간 째 고민한 지 모르겠다. 보충이 끝나고 전정국이랑 같이 학원에 도착해서 수업을 듣는 내내 멍 때리느라 나는 또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아, 안 돼... 눈 앞에 아른거리는 학원비를 생각해서라도 정신을 차리자 싶어 가방에 들어있는 인공눈물을 꺼내려는데, 가방이 있는 쪽에 앉아있는 전정국이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에?"

 

 

생각없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변백현 마저 날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얘네 뭐야? 눈빛들이 너무 부담스러워져 그냥 얌전히 가방에서 인공눈물을 꺼내 양쪽 눈에 몇 방울씩 넣어주고 수업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제집에 얌전히 올려놓은 내 팔 하나를 들어올리더니, 거기 아닌데 라며 무심하게 몇 페이지를 넘겨주는 전정국이다. 망했다. 나 5장 수업할 동안 뭐했어?

 

 

"oo 너 오늘 되게 이상하던데-. 무슨 일 있어?"

 

 

"그러니까. 너 학원 올 때도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이 걷더니."

 

"음... 아니, 뭐, 별일 없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이 두 사람한테 들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변백현은 그렇다치고, 전정국한테는 절대 들킬 수 없었다. 권지용이 한 말 가지고 이게 무슨 의미 같냐고 물으면 당연히 전정국의 반응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특히나 소미한테 내 마음이 약간(?) 들킨 바람에 말 하나 하나를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데, 당연히 쉽게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아.. 하하... 야, 나 진짜 아무 것도 없는데...? 어어, 근데 전정국 너 왜 국어 들어? 어제 들어보니까 영어랑 수학 듣는다고 하지 않았어?"

 

"영어 성적 오르고 국어 성적 떨어졌다고 국어로 바꿨어... 나도 오늘 알았다."

 

"아하..."

 

"이미 너 아무 것도 없다는 게 구라인 건 다 알고 있으니까 다음에 또 들키면 다 불어야 돼."

 

 

이 주제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던 도중, 어제 들은 변백현의 말이 떠올라 전정국에게 왜 국어를 듣냐며 신나서 물었는데, 하하 들켜버렸네? 그냥 다 불어버려? 혹시 몰라... 전정국도 이미 소미처럼 내 마음을 예상하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

 

 

 

 

***

 

 

 

 

며칠이 지났지? 일주일 정도 지났으려나. 약 일주일 전부터 나한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김태연이 우리반 앞을 계속 얼쩡거린다는 것. 가까우면 모를까, 김태연 반인 10반은 5층에, 우리반 3반은 4층에 위치하고 있기에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권지용을 보러 온다고 하기에는 나를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아무 말없이 슝- 가버린다.

 

 

"쟤 오늘도 너 보고 갔어?"

 

"응.. 와, 미치겠네. 나 스토커 생긴 건가?"

 

 

"아까 전정국 만났을 때 물어보니까 김태연 방학 시작하고 바로 보충 들은 것도 아니래. 갑자기 보충 들으러 학교에 왔다는 건데... 너무 수상한데?"

 

 

처음 몇 번은 그냥 우연이겠지 싶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너무 지속적으로 날 보고 가길래 이상하다싶어서 소미한테만 그냥 말해버렸다. 김태연의 속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 게 한 두개가 아닌데, 쟤까지 자진해서 내가 신경 쓰도록 만들어주다니. 눈물나게 고마워지려고 한다. 

 

 

"oo야, 아까 모자랐던 가정통신문, 여기."

 

"아, 고마워. 지용아."

 

"근데 아까 소미랑 얘기할 때 기분 안좋아보이던데, 무슨 일 있어?"

 

"아..."

 

 

권지용한테 비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하지만 솔직하게 며칠동안 김태연이 날 엿보고 그냥 간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내가 안좋게 보일 것 같았다. 그 말이 아무리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이라고 해도 좋은 말 같지는 않기 때문에 혹시나 권지용이 날 오해하는 일이 생길까봐 무서웠다. 괜히 내가 예민해서 과민반응 하는 거일 수도 있는데, 안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혹시 말하기 곤란한 거야?"

 

"아.. 아니! 그게, 음, 며칠 전부터 김태연이 우리반 앞에 와서 날 빤히 쳐다보고 가더라고... 지용이 넌 그게 뭐 별거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김태연이랑 많은 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별로 마주치고 싶지도 않고, 걔 얘기를 듣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 ...아, 이렇게 말하니까 나 되게 나쁜 애 같다. 아니지, 사실 나쁜 애 맞아.. 그냥 그거 때문에 기분이 별로 안 좋았어."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김태연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가 말할 권리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그때의 일을 생각하기도 싫어서 그냥 말하지 않았다. 이제 권지용이 어떻게 날 생각할 지는 얘가 알아서 정하겠지. 될 대로 되라 싶었다. 나는 그냥 내 모습을 왜곡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다. 

 

 

"미안해.."

 

"어?"

 

 

하지만 네 입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왔다. 전혀 권지용이 미안해 할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과하는 이유가 궁금해져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혹시 그 동안 날 착한 애로 생각했는데, 나쁜 애인 거 보고 실망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인 건가... 그 짧은 시간동안 혼자 오만가지 생각에 빠져있었다.

 

 

"태연이 얘기..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잖아. 난 그것도 모르고 너한테 고민 상담이라는 이유로 널 너무 힘들게 만들었네.. 몰랐다고 하면 모든게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정말 미안해... 무슨 일이 있었는 진 모르겠지만 oo 네가 그런 표정 짓는 건 처음 봐. 난 네 편이야."

 

 

나 정말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무섭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이 얼마나 더 커질지 너무 무서웠다. 점점 더 커져가는 내 마음이 이제는 나도 예상이 가지 않았고, 좀 전에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내 생각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주려고 했으면, 진작 나는 너에게 고백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널 잃는게 너무 두려워서 차마 그 솔직함은 보여주지 못 하겠다.